2014년 10월 23일 목요일

로마인 이야기 2,3권을 읽고

로마인 이야기 2권 (한니발 전쟁)
카르타고와 로마와의 1,2차 포에니 전쟁에 대한 이야기로 1차 포에니 전쟁에 카르타고군에 참가한 어린 한니발이 2차 포에니 전쟁을 지휘하며 알프스 산맥을 넘어서 이탈리아 전역을 유린한 전쟁.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과 로마연합의 전체와 맞선 전쟁은 초기에는 한니발의 우세였으나 카르타고 본국의 미진한 지원과 로마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라는 명장으로 똘똘뭉친 로마연합에게 자마전투에서 패하며 전쟁은 끝이난다. 

재미있었던 부분은 안렉산드로스 대왕의 전술을 발전시켜 실전에서 시전한 한니발의 뛰어난 능력과 그 한니발의 능력을 또한 자기것으로 만들어서 발전시켜 사부랄 수 있는 한니발을 패배로 몰아넣은 스키피오의 능력, 그리고 로마 수도를 제외한 이탈리아의 대부분이 유린당하는 상황에서도 깨지지 않고 결속시키고 있던 로마연합의 공동체 구성방식이다.

희대의 명장 한니발과 스키피오이 만나서 나눈 대화중에 재미난 부분이 있다. 
스키피오가 "최고의 장군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한니발은 
첫번째는 "안렉산드로스 대왕" 이고, 
둘번째는 "피로스 왕"이고 
세번째는 "나 한니발"이다. 
그러자 스키피오가 만약 당신이 자마전투에서 나를 이겼다면 이라고 묻자 "
그러면 내가 첫번째다"라고 대답한다.  


포에니 전쟁(라틴어: Bella Punica, 포이니 전쟁)은 기원전 264년에서 기원전 146년 사이에 로마와 카르타고가 벌인 세 차례의 전쟁을 말한다. '포에니(poeni, 포이니)'라는 말은 라틴어 Poenicus에서 나왔는데, 이는 페니키아인의라는 뜻으로 카르타고가 페니키아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로마인들이 그렇게 부른 것이다.
포에니 전쟁의 주요 원인은 당시 지중해에 패권을 잡은 카르타고와 새로이 떠오르는 로마의 이해 관계가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로마인들은 원래 시켈리아(시칠리아, 당시 이 섬은 여러 문화가 뒤섞인 곳이었다)를 통해 영토를 확장하는 데 관심이 있었는데, 이 섬 일부 지역을 카르타고가 지배하고 있었다. 제1차 포에니 전쟁이 일어날 당시 카르타고는 광범위한 제해권을 갖춘 서부 지중해의 패권국이었으며, 로마는 이탈리아에서 급속도로 떠오르는 신흥 강대국이었으나 카르타고 수준의 해군력이 없었다. 제3차 포에니 전쟁이 끝날 당시 두 나라는 병력 수십만을 잃으며, 로마는 결국 세 번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하여 카르타고를 정복하고 수도를 파괴하여 서부 지중해의 최강자가 되었다. 포에니 전쟁과 동시에 일어난 마케도니아 전쟁이 끝나고, 동부 지중해에서 로마-시리아 전쟁에서 셀레우코스 제국의 안티오코스 3세가 패배하면서, 로마 제국은 지중해 전역에서 패권국이 되었다. - 참고 : 위키백과

로마인 이야기 3권(승자의 혼미)
주변 마케도니아, 아프리카, 시리아 등을 속국 혹은 동맹국으로 평정한 로마는 평화의 시대로 접으들듯 하나, 어디에나 일어나는 내정 문제가 서서히 발생한다.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을 꺽고 전쟁을 종결시킨 스키피오가 공화정 내부에서 실각하거나 공화정 내부의 파벌정치에 따른 유혈사태 및 주변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이탈리아 귀국시 군대 해산을 해야하는 규율을 무시하고 힘으로 원로원을 장악하는 등의  내정 혼란의 시대가 계속된다. 이는 원로원, 민회등의 과두정치를 통한 공화정에 심각한 문제로 이후 4권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참고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대한 역사적 비판 글이 있어 참조하면 좋은 듯합니다. 로마인 이야기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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